HOJU MONEY

'21세기형 유목민' - 배우 겸 연출가 박영희

2014. Aug.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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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국민 간식 '떡볶이'를 호주 공연 무대에 올리다

매콤한 고추장에 송송 빠진 떡과 어묵으로 맛을 낸 음식으로 온 국민이 즐겨 먹는 간식은?
바로 누구나 좋아하는 '떡볶이'가 정답이다.

한국의 국민 간식 떡볶이의 마력에 호주 국민이 매료되고 있다.
지난 5월 퀸즐랜드 주 최대 일간지 쿠리어 메일이 '새로운 물결이 상륙하다'는 제목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해 한 편의 예술 공연작품을 소개했다. 바로 브리즈번 한복판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작품 'The 떡볶이 Box'에 관한 내용이다.

한국과 호주의 공연 예술가 박영희, 믹 맥키스, 네이슨 스톤햄이 공동 창작한 이 작품은 한국 길거리의 흔한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치열한 삶의 애환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선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6월 7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The 떡볶이 box'의 주역인 배우 박영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The 떡볶이 Box'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년 전 동료 네이슨과 한국과 호주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물질 만능주의로 치닫는 사회 모습을 보면서 동시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매일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네이슨이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유명한 희곡 '사천의 선인'을 읽고 흥분하며 제게 읽기를 권했어요. 전 대학 때 이 작품을 이미 여러 번 읽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으니 작품이 지금 현재 이 시대의 고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며 전율했어요. 수십 년 넘은 이 고전을 어떻게 2014년의 호주와 한국인 관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작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네이슨이 '포장마차가 어떨까'라고 제안했어요.

이후 일사천리로 네이슨과 함께 음악을 작곡하고, 한국과 서양의 1980~90년대 팝송 가운데 몇 곡 커버곡을 골라 재편곡했어요. 우리 개인의 이야기를 작품에 녹이면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거죠."


작품의 배경이 왜 하필 포장마차인가.

"포장마차는 누구나 와서 음식을 먹고, 때론 장시간 수다를 떨고, 어떤 소재의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소예요. 길거리라는 가장 내몰린 자리에서 공무원과 거리의 갱들과 씨름하며 하루하루 치열한 현실과 싸워야 하는 노점상들, 바로 포장마차거든요. 생각해 보니 우리가 던지고 싶은 질문들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포장마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 중에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는 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 .

"사실 처음에는 요리를 주변 레스토랑에 케이터링으로 맡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면허나 비용 면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제가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했지요. 덕분에 몇 배로 힘들긴 했지만, 관객들이 맛있게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해요."

배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면 어른들이 정말 큰 소리로 웃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듯한 기쁨이 있었고, 그 기억이 참 강렬했어요.
이후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가 드라마로 제작돼 국민적인 사랑을 얻었는데, 그때 아역으로 돌풍을 일으킨 또래의 안연홍 씨를 보면서 배우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던 것으로 기억해요. 사람들이 꼬마 아이의 연기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함께 탄식하다가 울기도 하는 그 모든 것이 제 눈에는 그 어떤 마법보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일, 저는 그것이 연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 이후 예고 입학을 결심하게 되기까지 한 번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았고, 정말 운 좋게 예고에 합격해 지금까지 이렇게 연기하고 공연 제작 관련 일을 계속 하고 있네요."


한국의 정서가 작품 안에 녹아든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적벽가를 사사했기 때문이라는데 … .

"처음 판소리와 탈춤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해서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춘향가를 시작으로 판소리와 처음 접하게 됐고, 이후 대학 졸업 즈음에 대학로 '두레' 극장의 기획자였던 진옥섭 선생님이 제 소리를 듣고 무작정 저를 적벽가 인간문화재셨던 고 한승호 선생님께 소개해 주셨어요.
저처럼 소리꾼이 아닌 20세 넘은 아마추어가 그런 대가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죠. 그런데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제 소리를 듣고 좋아하시는 거예요. 제가 좋은 소리통을 타고났다고 하시면서요.

돈이나 명예 따위는 안중에 없이 시간 구애 안 받으시고 언제든 제 소리를 봐주셨지요. 우리 전통의 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인간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 우리 삶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한국 전통 예술이 갖는 특별함이란.

"한국서 작업할 때도 늘 느꼈던 점이지만 막상 한국을 떠나 호주와 다른 여러 나라 예술가들과 작업하면서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 전통 연희가 가진 연극성이 세계 어느 나라 전통 예술과 견주어도 놀라운 수준이라는 사실이에요.
가부키와 노, 경극이 아시아 전통 공연 예술 형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서양의 공연 예술가들에게 판소리와 탈춤은 완전한 미지의 세계이지만, 그 속을 알게 되면 모두 경이로워하지요. 그들의 말이 가부키와 노, 경극은 눈으로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반면 우리 전통 소리나 춤은 뭔가 거칠고 투박하지만, 가슴을 뛰게 하고 몇 날 며칠을 계속 생각나게 만든다는 거예요."

본인에게 한국 전통 예술은 어떤 느낌인가.

"몇 해 전 어느 호주 연출가가 제게 묻더군요. "영희 씨, 혹시 이게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한의 정서'일까요?" 그때 깨달았지요. '우리가 서로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저들의 가슴에도 우리가 느끼는 이 뜨거움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세포가 존재하는구나'라고요.
소리꾼이 오직 북 장단에 맞춰 서너 시간 동안 수많은 인물을 자유자재로 연기하고, 손짓이나 부채 하나로 공간이 확 바뀌고, 노래 템포가 바뀌면서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수십, 수백만 장수들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 그려질 수 있는 것, 제겐 정말 마법같이 느껴져요. 연기와 연극이 세상 전부였던 제게는 판소리, 탈춤, 우리 악기 연주 등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보물이 돼 버렸어요."


일본,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거쳤는데 호주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 호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5년 서울의 라트 어린이극장과의 인연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우연히 제 절친인 영국 배우의 소개로 라트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그때 예술감독인 로저린드 씨와 처음 만나게 됐던 것이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어요.
로저린드 씨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당시 10년 넘게 작품 활동에 참여하는 등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인을 사랑하셨던 분이세요. 전직 램 극단 예술 감독으로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 감독,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10주년 개관 기념식 총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호주에서도 존경받는 예술가로 손꼽히는 로저린드 씨가 제게 '지칠 줄 모르는 전사'라는 애칭을 지어주실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시면서 호주와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


젊은 호주 예술가들과 교감을 나누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다면….

"2009년에 로저린드 씨가 저를 시드니 울릉공대학교의 연극 음악 학부 초청 교수로 추천해 주면서 엉겁결에 호주 연극학과 학생 50명과 수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어요.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도전해볼 용기가 생긴 거죠. 이후 2010년 로저린드 씨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그동안 그분께서 추진해 오시던 한국-호주 예술가들의 교류 사업이 제게는 그분의 마지막 유산이 됐어요. 그분의 예술적 유지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저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함께 친하게 작업하며 지내던 젊은 호주 예술가들과 공유하게 됐죠. "


호주에서 특별히 왕성한 활동을 펼쳤는데 호주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는가.

"첫 작품이 바로 '지하(Underground)'라는 록 음악극이었어요. 그 작품으로 퀸즐랜드주 관객들의 모임인 'Del Arte'에서 매년 선정하는 2011년 올해의 최우수 여우조연상에 선정됐어요. 호주의 순수 관객들이 매년 수백 편의 작품을 보고 직접 투표로 선정하는 상이라서 그런지 제게는 더욱 의미가 컸어요. 이 작품은 이듬해 뮤지컬 상과 각본상을 받으면서 평단에서도 폭넓은 지지와 인정을 받게 됐지요.
최근 3년 동안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호주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호주 정착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아요. 여유로운 생활, 수평적인 예술가들의 작업 형태 등 모든 것이 제겐 매력적이고 제2의 인생을 열어준 나라임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이 너무 많기에 미지의 나라를 계속 여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21세기형 유목민이라고 부르죠."


프로듀서, 감독, 배우, 연출가 등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불리고 싶나.

"배우로 출발해 무대감독, 보컬 코치, 연출, 프로듀서 등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이 사실 참 자연스러웠어요. 이 모든 일이 단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됐지요. 여기에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과 '무대에 설 때 무대 위를 비롯해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일로 연결됐어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대체 네 정체는 뭐냐? 제발 연기에만 집중해'라며 애정 어린 충고를 많이 해주셨어요. 막상 한국을 떠나보니까 저보다 10년 이상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작품을 쓰고 기획 및 연출에다 연기까지 하는 일이 여기선 너무 흔한 일인데 그것이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내가 그동안 연출가의 선택만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산 것은 아니었는지 많이 반성하게 됐지요. 그럼에도 전 배우로 무대에 설 때가 지금도 가장 신 나고 저를 흥분하게 만들어요."


만능 엔터테이너 활동에 애로점은 없는가. 그리고 향후 활동 계획은 어떤가.

"작년에 한국 국립극단 산하 어린이 청소년 연구소의 도움으로 제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하고 기획하고 연기까지 하게 됐어요. 연출은 가정에 비유하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이에요. 많은 책임과 통솔력을 비롯해 창의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골치 아픈(?) 역할이죠. 극작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인데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연기와는 또 다른 흥분과 색다른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글쓰기는 놓지 않고 계속 하려고요.

코칭이나 대학 강의는 학생들과 제가 서로 가진 것을 교류하고 더욱 강화하며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느껴요. 학생들과 만나면서 '아, 그렇지! 이게 기본이지! 세상에, 이렇게 엉뚱하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새로워요. 무대 위의 제 모습이 가장 즐겁지만, 작품과 연결된 각 역할 속에 다 투영돼 있으므로 저의 도전은 모든 분야에서 지속해서 계속될 것 같습니다."

'21세기형 유목민' 배우 박영희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그의 열정과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보다 앞으로 보여줄 모습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호주에서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질 멋진 무대를 기대해 본다.


양다영 기자

Submitted by admin on Thu, 08/21/2014 -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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