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JU MONEY

"Aus에서 핀 들꽃" 한지 신숙희님

2014. Oct.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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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에서,

한인 사회에 도전을 주는 당당한 여성이 되다!

"Aus에서 핀 들꽃" 한지 신숙희님

 이민 1세대 한국 여성으로서, 40세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끝없는 자기 계발과 도전으로 48세에 TESOL 박사 학위를 시드니 대학에서  취득한 후, 시드니 소재 Charles Sturt University에서 호주 학생과 세계 60 개국에서 온 유학생을 상대로, 영어영작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고 계신 신숙희님을 만나보았다. 그녀는 또한 호주의 일상 생활에 관한 수필부터 다양한 분야의 칼럼에 이르기까지, 호주 한인 교민들과 한 장의 정성스런 편지와 같은 글들로 지난 육년간 소통해 왔다. 또한, 호주한인 신문에 영어 한마디 코너를 담당하여 교민들의 영어 습득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을 오시고, 정착을 하시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으셨는지요?]

처음 호주를 오게된 건, Wollongong University에서 컴퓨터과 박사 학위를 위해 유학을 결심한 남편 때문이었어요. 세 아이들과 함께 91년도에 호주 울릉공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것이죠. 그때 나이는 서른 다섯이었고, 영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어요. 처음 4년은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유학생을 상대로 하숙집을 꾸려 생계를 이어 나갔어요. 그러던 중 스트레스로 임파결핵이라는 병이 걸리고, 두 번의 큰 수술도 겪어야 했죠. 1년 반동안 약을 먹으며 지내면서 저의 인생이 끝난 줄 알았어요. 저에게는 그 때가 호주 생활 중에서 힘들었던 시간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95년도에, 호주 정부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친 자들에게만 제공하던 스페셜 케이스로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었죠. 그때가 남편이 울릉공 대학교 박사학위를 마친 시점이었습니다. 

 

[처음 호주를 오셨을 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TESOL 박사 학위까지 받으실 수 있었던 건가요?]

영주권 받기  이전에는 혼자 집에서 애들 재우고 나서 혼자서 영어를 공부했어요. 설거지 하면서  지방 신문을 보다가 메모한 모르는 단어들을 외우곤 했죠. 영주권을 받고 난 뒤 .좀 더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이민자 영어코스에 등록을 했으나, 여전히 대화하는 게 무섭고 스트레스가 되었어요. 생각보다 그 영어코스에서는 제가 원하는 수준의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한 달 뒤 저는 TAFE에 등록을 했어요. 그곳에서 6개월간의 아카데믹 영어 코스를 마치고 나니 울릉공 TESOL 석사 과정을 등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미 저는 한국 부산대학에서 화학 교육 학사 학위 그리고 교육 심리 석사 학위를 받았었기에, 곧바로 석사 과정으로 등록이 가능했었던 것이죠. 여전히 말하는 것에 문제가 많았지만 공부는 그런대로 잘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호주의 영어 교육 의 기본적 토대인 SFL(Systemic Functional Linguistics)에 매료되어 박사 과정 준비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제게 좀 더 익숙했던 미국 이론으로 계속 접근하려고 하니, 한 번은 지도교수님이 저를 시드니대학 에서 열린 세미나에 데려 갔습니다. 그 세미나를 참석하고 나서 전광석화같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 프로포즐이 참신해서였는지, 시드니 대학에서 경쟁이 심한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SFL이론에서 새로  개발된  ‘appraisal theory’  를 아카데믹 쓰기에 처음으로 적용하여 학위를 받았어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는 그 이론 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 생겨서 더 깊게 연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이론이라 힘들었지만 영국 이론까지 합쳐 제 나름의 독특한 영어 교수법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지금까지 약 10개가 넘는 논문을 미국 영국 호주 홍콩 등 국제 유명저널에 발표하였고,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서의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뒤, 7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은 경험으로 제 이론을 접목한 영어 교육 책까지도 발간하였습니다.

www.learn4good.com

[교수님으로서 학생들도 가르치시면서, 계속 많은 페이퍼도 발간하고 책도 쓰시는데 그 바쁜 시간 가운데에서도 수필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생긴 것은 ‘투박’한 (?) 편인데 보기보다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하는 성격이에요. 산속길에 핀 꽃 한송이에도 한참을 예뻐서 쳐다보는 성격인데, 이 아름다운 호주에 오니 얼마나 더 신기하고 감동받을 것이 많았겠어요. 하루하루 주변의 자연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차근차근 제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죠. 지금은 제가 호주의 일상 생활, 교육, 사회, 경제의 분야에 관해 쓴 글들을 모아서 책을 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냥 저는 쓰기를 좋아하고 저의 생활의 흔적을 일기처럼 쓰되, 남과 나눈다는 의미로 호주 온 첫날부터 계속 써왔습니다.

 

[가정까지 돌보시면서,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해내실 수 있으신 건가요?]

저는 여자로서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도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늘 하루의 목표를 적은 뒤 그것의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그에 따라 처리합니다. 제가 해야될 많은 일들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도 장점인것 같아요. 남들은 저보고 바쁜줄 아는데 저는 항상 여유가 있어요. 주말에는 지역봉사도 합니다. 저는 일 자체가 놀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늘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하죠. 그러다보면 세월이 흘러 많은 일을 한 것 처럼 보여요. 

 

[말씀을 나눠보니 정말 소녀처럼 감성도 풍부하시고 마음이 여리신 것 같은데, 칼럼으로 교민들과 소통하면서 상처를 받으시는 일도 있으리라 생각돼요.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시나요?]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딪히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죠. 처음에는 교민 분들에게 상처를 받은 적도 많았고, 또 제 가족, 직장의 상사에게도 상처를 많이 받 았어요. 하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상처는 그  누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받는 것이란  거에요. 오렌지를 짜면 오렌지가 나오듯이 아무리 상사와 주위 환경이 나를 쥐어짜도 결국은 제 자신의 본질이 나오거든요. 만약, 누군가가 나를 쥐어짰을 때, 내가 같이 반응한다면 그것은 나자신의 문제가 많아서이고 한없이 연약한 나자신 때문이죠. 상처에 대한  자기의 내공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 자신을 바꿀려 노력하고 개발할려고 노력해야죠. 그래서 자기자신이 더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요. 자신에 대한 자긍감이 강하고 스스로 기분이 좋으면 남이 뭐라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않아요. 받더라도 감정을 글로 풀거나, 또 다른 방법으로 빨리 상처를 잊어야죠. 그러나 한 25% 의 사람들 즉 늘 부정적이거나 늘 남을 비판하거나 남말하기 좋아하는사람 과는 인연이 소중해도 아예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이 참을 수 있는 경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틀리다는 생각보다 다르다는 선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려고하면 대부분의 경우 오해가 시간이 지나면 풀립니다. 결국 ‘victim mentality ‘ 가아니라  ‘victor mentality’ 를 가지고 ‘누구때문이 아닌’ ‘누구 덕분에’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고통을 준 주위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게 되죠.

 

[지금 호주에서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고, 또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한국 교민 주부들이 많을텐데요, 그런 주부분들에게 한국 교민 여성으로서 전해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원래 원대한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다보니 ‘top down’  방식이 아니라 ‘bottom up ‘식으로 꿈이 점점 형성되어 갔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것과 책 읽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하던 평범한 주부였죠. 하지만, 영어를 못해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하여 영어를 좀 더 공부하고 ,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면서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애들 키우면서 짬짬히 꾸준히 공부하면서 차근차근 쌓아나가니 큰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부라 하더라도 항상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야 해요. 늦은 나이라도 아무 상관없어요. 자신이 열정을 느끼는 무엇인가를 찾아야죠. 이민자로 영어공부는 필수입니다. 영어는 힘을 주고 주체성을 강화 시킵니다. 주부일수록 더욱 더 당당하게 대화할 수 있게 끊임없이 공부하세요. 저는 지금도 늘 영어공부를 틈내어 합니다. 또한, 책을 읽으면 늘 생활이 활기가 있어요. 저도 책 안에서 제 안목을 넓혀나갔고 길을 찾았던 것처럼, 항상 책을 읽고 그 안에서 길을 찾고 마음을 열도록 노력해야 해요. 눈이 안좋아서 책을 못 읽겠다고 하시는 주부들이 있나요? 당근을 갈아 마시면 돼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때 저는 그냥 여기서 영어선생으로 은퇴를 하며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어요. 즉  ‘Survival mentality’ 를 가졌던거죠.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와 상관없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Thrival mentality’를 가져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저의 역량을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더 읽고, 연구하고, 공부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들을 나누어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어요.. 여러나라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번 한국 학회를 처음 방문하면서 그것을 많이 느꼈죠. 요즘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가르치지만, 언어의 본질을 잘 모르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들을 훈련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어 이론을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적용하여 그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죠. 그래서 저는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TESOL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저의 SFL 이론적 토대를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문교부산하 교원 연수원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좀 더 효과적인 영어 교육을 위해 저의 이론과 제가 가진 지식들을 세계를 돌아다니며 널리 알리는 것이 저의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영작에 관련된 책을 발간하는 것도 저의 꿈입니다.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저 자신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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