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JU MONEY

호주 한인교포들의 자랑스러운 롤모델인 한국계 최초 주한 호주 대사 제임스 최의 성공에는 호주 이민 1세대인 전형적인 한국 부모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2017. Feb.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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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최대사가 1996년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모습(왼쪽). 호주 교포 조앤 리와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다 2016년 11월 결혼(가운데). 최 대사가 2014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줄리 비숍(가운데) 호주 외교장관과 조깅 하는 모습.

오랫동안 호주 외교통상부 소속 외교관으로 근무해 제임스 (한국명 최웅. 46) 외교관이 호주 한인교포 최초로 호주대사에 임명되어, 2016 12 한국에 왔으며 북한(DPRK) 대사직도 겸임하고 있다. 60 호주 한인 이민사의 설움과 노고를 일거에 씻어준 쾌거로, 대사는호주 한인 교포들의 자랑스러운 롤모델(role-model)이다.

1970 한국에서 출생한 대사는 4 때인 1974 부모님과 누나(현씨로 시드니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 함께 호주로 이민시드니에 정착했다. 호주에 이민 가기 한국에 대한 최대사 기억은 광주 옛날 집에서 세발자전거를 탔던 거의 전부라며, 굉장히 아쉬워 한다. 최대사 아버지 최종범씨는 대한민국 육군 항공대 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후, 소령으로 예편했다. 1974 최종범씨는 호주 회사의 헬기 조종사로 기술이민 초청을 받았. 불행하게도 이민 가던 해인 1974 세계 오일 파동이 일어났고, 호주 경기도 좋아져 최종범씨를 채용하려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최씨 부부는 공장에서 일하는 험난한 초기 이민생활을 겪어야 했다. 당시 호주 교민은 파월 기술자로 일하다 사람들과 유학생, 공관원을 합쳐 수백 명에 불과하던 시절이어서 도움받을 곳이 없어 최대사 가족은 호주에 정착하는데 힘이 들었다. 아버지는 식품 공장, 어머니는 에어컨 공장에서 일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전형적인 한국 부모인 최씨 부부는 최대사와 최대사 누나를 정말 열심히 뒷바라지 하였다.

최씨 부부는 자식들만큼은 호주에서 설움 받지 않도록 가르치려고 교육에 열성을 쏟았고, 두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사의 어머니 배진옥씨는 "우리가 이민 70년대만 하더라도 호주의 백호주의 경향이 여전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성장해준 것에 감사하다" 덧붙였다.

최대사는 학창시절 스포츠를 정말 좋아했다. 처음 호주 학교에 갔는데, 한국에서 학생은 최대사 뿐이었다최대사처럼 외국에서 호주로 이민 학생들이 많았는데, 학교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서로 어디서 왔는지 찾아봤으며, 모두 살아온 배경은 다르지만 운동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면서 친해질 있었다. 특히 최대사는 협동심이 중요하여 호주의 국민 스포츠라고 있는 크리켓에 빠졌다.

최대사는 처음부터 외교관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시드니 테크니컬 하이스쿨(Sydney Technical High School)때는 경제학과 법학에 흥미가 있어서 그런 방면의 학자나 법조인이 되고 싶었고, 시드니대학(The University of Sydney)에서 경제학과 법학(Economics & Law) 복수 전공할 교역과 국제법에 대해 배우면서 어떤 나라는 부강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은지 관심을 두게 됐었다. 1994 120 1 경쟁률을 뚫고 외교관시험에 합격, 호주 외교부에 들어갔다. 동기생 가운데 동양인은 최씨와 인도인 1 2 뿐이었다. 외교부 들어간 최대사는 외교·국제관계는 워낙 불확실성이 크고 빠르게 변화하므로외교 현안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있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대사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3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 정부의 공무원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인 부모를 두고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많이 익혀 양국의 친선관계에 기여하고 싶다" 고 말했다. 그당시 최대사는 세발자전거를 탔던 광주 옛날집에 갔고, 신라 시대 수도였던 경주에 가서 불국사, 석굴암도 구경했으며조선 시대 백자 도자기를 보려고 국립중앙박물관도 자주 갔다. 서울 광화문 뒷골목에 있던 피맛골에 작은 한옥 음식점 중에 위치한 단골 칼국숫집에도 자주 갔다. 주말에 광화문, 신촌, 홍대 앞에서 폭탄주도 많이 마셨고 노래방도 자주 갔다연공서열 같은 직장문화, 효도의 전통에 대해서도 배우면서 한국 역사, 특히 조선왕조 시대의 일본,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공부했는데, 현재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유엔 주재 호주 상임공관으로 근무(2002-05) 캔버라로 돌아온 최대사는 3년간 총리실 아시아부 국제과의 상임고문(2005-08)을 역임한 후, 호주 외교부 입성 16 만인 2010 마흔 살에 주덴마크 호주 대사가 됐다. 2013년부터 3년간 호주 정부 실세 명인 줄리 비숍(Julie Boshop) 외교장관 수석자문위원으로 일하다 2016 12 주한 대사에 임명돼 부임했다.

대사는 2013 덴마크 대사 재직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인으로서 호주에 이민 겪었던 어려움을 이겨낸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호주 정부를 대표하는 한국계로 일해 왔던 경험들이 ‘한국의 유산과 뿌리를 재발견’하는 기회였다”으며, “호주에서 이민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업성적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삶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있는 능력은 다문화사회인 호주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 국민 스포츠인 크리켓을 배우고 즐기면서 호주인들과 쉽게 동화될 있었다. 그는 한인 동포들에게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신들이 집중하는 모든 분야에서 성공했다. 다만 성공의 범위를 너무 좁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웅이란 한국 이름도 갖고 있는 최대사는 4 한국을 떠났지만 부모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가정에서 한국말을 써서 한국어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한국어가 유창한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부터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까지 한국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다. 최대사는 관례상 공식 인터뷰는 영어로 하지만, 사실 한국어로 전부 대답할 있다. 최대사는 “기본적으로 저는 호주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라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주한 미국대사도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같아요. 그분이 한국어를 잘하는데 한국에 있을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모두 영어만 써서 오해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저는 사석에선 가급적 한국어를 보려고 합니다.”고 밀했다.

한국 소설도 좋아해서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흥미롭게 읽었다고 한다. 안동 출신 유학자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징비록' 썼는데, 영어로 'Book of Corrections'라고 하는데,  책은 현대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최대사가가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는 '흥망성쇠' 인생의 우여곡절을 설명하기에 좋기때문이라고 한다.

제임스 대사는 2016 11 작년 부임 직전 호주 교포 조앤 리씨와 결혼했다. 둘은 1995 서울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일할 처음 만났는데 20 넘게 계속 연락하며 친구로 지내다가 21 만에 부부가 됐다. 최대사는 20 우리 관계를 시작했던 이곳에 부부가 되어 돌아온 마치 하나의 원을 완성한 같은 느낌 입니다. 아내는 저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앞으로 한국과 호주 관계에 도움이 거예요.”라고 말했다.

제임스 대사는 2016 12 한국 부임 인스타그램 계정(@ausambkor) 만들고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최대사는 외교관이란 직업은 1994 최대사가 호주 외교부에서 일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사가 대사관에서 정부 관계자만 만나고, 주재국 사람들과 어디서든 자주 만나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최대사는 한국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만약 최대사가 한국에서 계속 자랐다면 이렇게 호주 대사가 되지 못했을 같다고 한다. 최대사는 “저는 한국과 호주에 모두 빚을 셈입니다. 한국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이민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호주에서 교육 받고 대사까지 됐으니까요. 근면·성실 같은 한국인 기질에,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호주의 ‘페어 (Fair Go) 문화가 저를 있게 셈이죠. 학생들은 공부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을 자극하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공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다.

최대사는 한국과 호주 양국 관계를 격상시킨 대사로 기억됐으면 한다. 최대사는 한국·호주 관계를현재 국제 환경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보호주의, 고립주의가 부상하고 있고요. 특히 미국이 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미·중 긴장 관계가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죠. 이런 상황에서 호주는 한국의 최적의 동반자가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각각 11, 12 경제 대국입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이 2+2(국방·외교) 회담을 하는 유일한 나라가 호주입니다. 호주를 한국에 알리고 싶어요. 호주가  와이파이, 항공용 블랙박스, 자궁경부암 백신을 발명한 나라라는 아세요? 노벨상 수상자도 16 배출했습니다.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 잭맨, 깁슨, 케이트 블란쳇, 가수 카일리 미노그도 호주 출신이고요. 호주가 6·25 참전국이란 사실은 아시죠?” 라고 설명했다